■ 이전
▶ 1918.1
1차 세계대전
후반 , 미 의회에 민족자결주의를 포함한 14개 조 원칙이 제출됨.
▶ 한국인들이 처음엔 회의적이었지만, 이를 독립운동의 계기로
삼으려 했음.
▶ 1918.12 미
교포들의
파리 강화회의 참석
준비와 독립운동자금 모금이
신한민보에
게재되었으며,
- 일본 유학생들은 신한민보 등을
통해서 교포들의 소식을 접함.
▶ 1918.12 말
일본 유학생 모임에서 조선 독립 주장이 제시됨.
▶ 1919.1
웅변대회를 통해 구체적 독립운동 개시를 결의하고, 임시위원을
선정함.
▶ 임시위원과
신한청년당 이광수(28)
등이 참여하여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, 독립선언서를 작성함.
▶ 1919.1 말
손계백은 독립선언서를 서울로 가져가고,
- 이광수는
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미국, 영국 대통령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보냄.
■ 2.8 독립선언
▶ 2.8 오전 10시경
유학생 총회 공지하고,
- 독립선언서를 각국
대사관과 공사관, 일본 정치인들, 조선총독부, 신문사 등에 보냄.
▶ 오후 3시경 유학생 총회를 가장한 조선청년독립단 대회를 개최하여
독립선언서를 낭독함.
▶ 오후 3시 50분경
일본 경찰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연행함.
▶ 2.9~
상해 ‘차이나 프레스’, ‘데일리 뉴스’에 2.8 독립운동이 소개됨.
▶ 참여한
학생들은 출판법 위반으로 예심 없이 실형을 선고받음.